소주는 포장마차 속 전구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거짓말 같이 매끄럽게 술잔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겨울의 밤, 바람은 역시 무척 차다. 김을 내뿜고 있는 오뎅 국물을 사이에 두고 정현이는 술 한 잔에 근심을 섞어 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노랗고 맑은 국물 속에 어지러이 널린 파들이 내 마음 같았다. 수저로 이리저리 저을 때마다 수저를 따라 파들도 함께 이리저리 움직였다.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았다.
“혀엉, 그거 울리는 거 아니가”
추위 탓인지 술 탓인지 평소보다 더 달아오른 정현이가 갑자기 얼굴을 들고 나에게 말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허리춤에 찬 삐삐를 더듬어 보았다.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기대 없이 반응처럼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익숙한 번호. 그녀.
“아줌마, 여기 공중전화 어딨어요”
주인아줌마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턱짓으로 저 끝을 가리킨다.
“잠깐만 있어봐라.”
정현에게 짧게 한 마디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는 '부욱-'하고 바닥을 긁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식탁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쓰러졌다. 이미 포장마차를 한참 벗어난 내 귀에 플라스틱 의자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는 멀고 둔탁하게들렸다. 뒤를 돌아봤을 때, 정현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신의 술잔에 술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거칠게 공중전화부스의 문을 열었다. 주머니에 차갑게 언 동전 몇 개가 느껴졌다. 툭, 툭하고 공중전화 돈통 안으로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심장도 떨어지는 듯하다. 들고 있는 수화기가 제법 묵직하다. 삐삐 번호를 눌렀다. 긴장한 탓인지 잘 눌리지 않았다. 신호가 가고 인삿말 대신 녹음해둔 노래가 나를 맞이한다. 이 노래를 들었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무척 부끄럽다. 귀가 뜨겁다. 몇 차례의 안내멘트를 지났다. 한 개의 메시지. 그리고 영원과 같은 포즈.
“오빠, 난데, 지금 오빠 집 근처인데…….”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뛰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가로등은 그녀를 향해 길을 안내한다. 다리가 가볍다. 당장이라도 공기를 타고 날아갈 것만 같다. 거리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정현이가 앉아있는 포장마차를 지나 술기운 가득한 거리를 관통했다. 쭉 뻗은 길 따라 사람들은 가득 술집에 들어차 있었다. 흥청망청 마셔대고 웃음소리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술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번잡한 거리를 벗어나 주인 할아버지가 홀로 지키고 있는 슈퍼를 지나쳤다. 늦은 시간 길가에 귀가한 차들. 익숙한 차번호들이 보인다. 하나씩 꺼지는 불빛들. 그리고 하늘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별들. 어느새 공기 냄새가 달라졌다. 그녀가 길 끝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아무리 달려도 길은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익숙한 골목들을 지난다. 집 앞에 놓인 언덕길에서부터 식었던 귀가 다시 달아올랐다. 심장 고동 소리가 머리까지 전해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나의 풍경 한 켠에 그녀가 서 있다.
“오빠”
어두운 그 밤에 배꽃같이 해사하게 웃는 그 애가 내 앞에 서 있다. 그 애의 손에는 자기 몸집만한 커다란 봉지가 들려있었다. 빨개진 손 끝이 그녀가 느끼고 있을 무게와 추위를 가늠케 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하고 안았다.
“왜 그래요...”
뜨거운 숨소리와 떨리는 그 아이의 목소리.
“잠깐만..”
지금 그 아이를 마주봐서는 나의 바보 같은 얼굴이 들킬 것 같다. 표정을 숨길 수 없어 멍청하게 일그러질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말 잠깐만, 내 가슴이 뛰는 게 멈출 때까지만.
“너 안 같아. 믿을 수 없어.”
겨울 밤공기에 서늘하게 식은 그녀의 체온이 전해진다. 그녀의 마음도 나와 함께 뛰고 있다. 멈추기가, 나를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붙잡고 싶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오빠, 근데 어디 있다 온 거 아니에요.”
그녀가 어렵게 그리고 작게 말을 꺼낸다. 말과 함께 내 귀에 전해져 온 그녀의 숨소리가 간지럽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숙인 채 어색하게 멀어졌다. 한참을 서로의 발끝만 바라보았다.
지인에게 루시드폴이 본인의 곡 '그건 사랑이었지'를 쓰게 된 배경을 듣고 쓴 글이다. 들을 당시에는 무척 낭만적이고 가슴 터질 듯한 이야기...였는데 실력 부족을 탓해야지. 뭔가 더 낭만적인 결론을 내고 싶기도 했다. 역시 어려웠다. 하지만 노래 '그건 사랑이었지'를 들으면 그 자리에 서서 추위에 떠는 듯한 폴의 수줍은 보컬-당장이라도 입김이 뿜어져 나올 것 같다-과 산등성이 너머에 걸린 촘촘한 별빛같은 피아노 건반을 통해 폴의 당시 설렘을 잘 느낄 수 있다.
언제나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만나면 드라마 같이 극적인 상황을 꿈꾼다. 특히 내가 보고 싶을 때 마법같이 그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는 그런. 아,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폴은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사람의 변한 마음을 수긍해야하는 시간이 온다. 힘들다. 그래도 죽을 것 같이 절망적으로 다가오던 그 시간들이 어떻게 그럭저럭 지나가는 걸 보면, 또 똑같이 그런 사람을 그런 극적인 상황을 기다리며 사는 걸 보면 사람이란 것은 억겁의 시간이 지나 하체와 하관이 짧아지고 손가락이 길어지며 뇌가 커져 이티(E.T)같이 변하는 때가 와도 똑같이 그러고 살 것 같다. 누군가는 야밤에 루시드폴의 전설같은 이 얘기를 전해 들으며 복기를 하고 각색을 하고 곡을 쓰기도 하고 소설을 쓰며 눈물을 훔칠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거니까.

덧글